바비위트주니어의 이야기

2025. 3. 27. 10:53카테고리 없음

 

‘리틀 리그’ 코치 피치 기억하시나요? 나이가 애매해서 티스탠드에서 공을 치기도 그렇고, 또래 투수들은 타자들을 맞추지 않으면 투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가의 아버지가 마운드에 올라 치기 쉬운 공을 던져주던 그 순간들 말이에요.

 

그때가 제가 야구를 했던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이에요. 

 

텍사스 콜리빌의 ‘The Lone Stars’ 팀에서 뛰었죠. 당시 나이는 6살쯤 됐던 것 같아요.

 

그때의 기억은 3루타처럼 화려한 것이 아니에요. 제 머릿속에는 한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제 모습이죠. 야구장 한쪽에서 홀로 서 있고, 두려워하고 있는 느낌...

 

정확히 두려운 것 같진 않지만, 묘한 기분이었어요. 

 

그때 친구들과 같이 필드로 뛰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홀로 서 있었어요, 마치 얼어붙은 듯.

 

어린 아이들이 가끔 팔을 축 늘어뜨리고 어색한 모습으로 바닥만 응시하는 모습 있죠? 저는 그랬어요.

 

그때 텔레비전에서 야구를 보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화면 속에서 야구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는 뒷마당에 나가 그들의 타구 폼을 따라 하곤 했어요.

프린스 필더의 발 탭, 페드로이아의 배트 흔들기, 데릭 지터의 높이 치켜든 배트와 야구장 반대편으로 시원하게 날리는 듯한 스윙 등을요. 제 아버지께서 야구로 생계를 유지하셨기 때문에, 야구선수가 된다는 생각 자체가 정말 멋지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뭔가 좀...

 

솔직히 경기가 시작될 때 저는 수줍음이 많았어요.

 

좀 이상한 이유였죠. 야구는 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보는 게 싫었어요. 실수하는 게 두려웠고,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도 싫었고, 다른 사람들이 제 실수를 보는 것도 싫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지금도 그때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어린 시절 경기가 저에게 그런 영향을 미쳤는지. 훈련은 정말 달랐어요. 매번 훈련에 가서 뭐든 할 수 있었어요. 걱정도, 두려움도, 불안도 전혀 없었죠. 치고, 던지고, 달리고...뭐든지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면, 제 야구에 대한 애정조차 뭔가 저를 막았어요.

 

그게 뭘까요?

 

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제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바비? 그는 집돌이죠”라고.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지냈어요.

 

야구 훈련이 끝나면, 그냥 집에 가고 싶었어요.

 

소파에서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었지만요. 항상 핸드폰을 보고 있긴 했지만, 사실 저는 항상 밖에 있었어요. 친구가 놀러 오든, 혼자 있든, 마당에서 놀았죠. 가끔 혼자서 미식축구공을 차며 놀거나 하늘로 공을 던져 잡고 놀았어요.

 

하지만 제가 제일 좋아한 건, 흠집 난 위플 볼 배트를 들고 단단한 돌멩이를 담장 너머로 쳐내는 거였어요. 그때마다 완벽한 크기의 돌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죠. ‘저건 너무 날카로워, 저건 너무 납작해... 저건 담장을 넘기겠어’ 하면서요. 하루 종일 그렇게 돌을 쳤어요. 부모님은 제가 날린 돌이 실수로 예초기로 갈려 파편들이 튈 때마다 많이 화를 내셨죠.

 

저는 항상 ‘월드 시리즈 7차전 경기입니다! 주니어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9회 말, 투아웃!’이라고 말하며 놀았어요. 돌멩이를 못 치게 되면 ‘잠시만요, 노 피치! 심판이 타임아웃을 선언했습니다! 믿기 힘듭니다.., 주니어 선수가 다시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며 돌맹이를 쳤죠.

 

 

어린 시절 정말 재밌었어요. 집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게 다였지만, 그게 전부였어요. 사람들이 가끔 제게 ‘탄탄대로를 걸어왔겠지’라고 말하는데, 그건 맞아요. 유전적으로 축복받고 사랑받는 가정에서 자라 부모님의 응원도 받았어요. 제 아버지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셨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죠. 정말 운이 좋았어요.

 

하지만 그게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에요.

 

저는 자라면서 제 상황에 감사함을 느꼈어요. 남들이 실망하거나 화를 내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고, 항상 옳은 일을 하며 최선을 다했어요. 아마 이런 특성이 제가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도록 이끌었겠죠. 하지만 이런 방식은 삶을 사는 데는 이상적이지 않아요, 특히 어린아이에게는요.

 

가장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는 항상 걱정이 앞섰어요.

 

매일, 크고 작은 일에 대해 걱정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걱정은 남들이 제게 어떻게 생각할지였어요. 제가 옳은 행동을 했는지, 잘못했는지 말이죠. 잘못하고 싶지 않았고, 남들이 저를 안 좋게 생각하는 걸 싫어했어요. 그렇게 살면...가끔 내면이 무너지기도 해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야구에서는 경기 중의 불안과 긴장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어요. 정확한 전환점은 모르겠지만, 경기장에서 성공을 경험하거나 친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큰 홈런을 쳐서 팀원들과 기뻐하거나, 우승을 해서 더그아웃에서 함께 날뛴 그런 경험들이요. 

 

그 후로는 긍정적인 순간들을 진심으로 즐기기 시작했어요. 나중에는 훈련이 일상처럼 느껴졌고, 경기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신나는 일이었죠. 예측 불가능한 것이 이제는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저와 야구의 관계는 급격하게 발전했어요.

 

12살 때, 텍사스 주의 작은 아이였던 저는 트래블 볼에서 다양한 토너먼트와 쇼케이스를 통해 점차 명성을 쌓아갔어요. 13살이 됐을 때는 국내 10위 안에 들었고, 14살에는 종합 1등이 되었죠.

 

불평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 끝내줬어요! 하지만 그만큼 주변의 기대도 컸어요. 그 기대에 부응하려면, 정당화하려면서 살아야 했죠. 14살에 메이저리그를 달성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 걸 상상해보세요. 다른 희망이 아니라, 그 ‘기대’가요.

 

15살 때는 고등학교 야구도 해보지 않았는데, 제 꿈의 학교에서 장학금 제안을 보내왔어요. 바로 오클라호마 대학교였죠. 

 

정말 미쳤죠.

 

 

그때는 죽어라 훈련했어요. 최고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죠.

 

제 아버지는 항상 제 발전을 위해 힘써주셨습니다. 타자 코칭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아버지와 제가 다였죠. 아버지는 제 스윙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으면 바로 눈치채셨어요. “왜 그렇게 하는 거지?”라고 물으셨죠. 그때마다 저는 “그냥 텔레비전에서 누군가 이렇게 쳐서 홈런을 날렸어요”라고 변명했죠. 아버지는 제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걸 확실히 막으셨어요. 제 진심을 원하셨죠.

 

그 모든 시간이 즐거웠어요.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게임을 하거나 훈련을 하거나.

아버지, 어머니, 심지어 누나들까지 제게 말했어요. “너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을 사람이 항상 있을 거야.”

그 말은 제 가슴에 깊이 새겨졌어요.

 

“캘리포니아에도, 플로리다에도 누군가 있을 거야.” 아버지의 말씀이었죠. 이 말들은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상상 속의 투스카루사 출신이었던 아이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려고 항상 필드에 나가 수백만 개의 그라운드볼을 받으며 훈련을 했습니다. 자라면서 스트레스나 기대의 무게를 느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회의감을 느끼고,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죠. 

 

제 출신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텔레비전이나 위키피디아에서 제 이야기를 읽은 분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 저도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요.

 

리틀리그 시절부터 저는 언제나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진짜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은 아직도 제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트래블볼과 쇼케이스에 나가면서 그 걱정은 더 커졌습니다. “X팀 코치님이 내 최선을 봤을까? 내가 던졌을 때 머뭇거렸던 순간이 있었나? 발 동작 실수는?” 그런 걱정들이 드래프트 2순위로 지명되고, 프로 팀에 입단했을 때도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마이너리그 첫 해, 2019년 아리조나 리그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당시 제 유니폼 번호는 17번이었어요. 제 좋아하는 선수인 페드로이아와 지터를 기리기 위해 그들의 번호(15번과 2번)를 합친 번호였죠. 

 

초반엔 괜찮았지만, 집에 돌아오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이랬고, 저 사람은 저랬는데 나는 뭘 했지? 프로야구에서도 저조한 성적을 내는데, 이게 다인가?” 그럴 때마다 ‘왜 나는 더 잘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때 코로나가 닥쳐왔고, 모든 상황이 악화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죠. 2021년, 메이저리그 캠프에 초대받았을 때는 조금 더 희망을 가졌습니다. “2루로 가면 메이저리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었죠. 하지만 그때 ‘쾅’ 하는 충격이 있었습니다. 

 

바로 강등당한 거죠.

 

그때 정말 아팠습니다. 제 자신이 무능력하게 느껴졌고, 다시 한 번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생각보다 잘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나는 더 할 수 없을까?’ 그 생각은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더블 A로 강등된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타격이 잘 안 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럼에도 그때는 정말 충격적이었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 타격 코치와 새벽 3시까지 통화하면서 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내 스윙에 문제가 있는 걸까?" 그때 제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죠. 

 

진정해야 한다는 것.

 

2022년, 드디어 메이저리그에 올라갔을 때 카우프먼 스타디움에서의 개막 경기가 정말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릴 때 자주 레인저스 경기에 가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죠. 개막 경기 전날 밤은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경기장에 도착하고 준비를 하던 중,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첫 번째 타석이 다가왔습니다. 팬들이 저를 위해 기립박수를 보내주던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부터 이 도시, 캔자스시티가 제 두 번째 고향처럼 느껴졌어요. 제 인생이 마치 이곳에서 야구를 하기 위해 쓰여진 대본 같다는 느낌이었죠.

 

 

 

첫 경기에서 승리에 기여하고, 팀과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제 자신을 점차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시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패배를 경험하며, ‘진짜 메이저리그야. 내가 기대하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압박이 저를 짓누르기도 했죠.

 

그때 저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멘탈 퍼포먼스 코치를 찾아가게 되었죠. 그분은 제게 준비 과정에 집중하고, 결과나 통계에 집착하지 않게 도와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이제 더 이상 야구와 제 삶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고, 야구장 밖에서의 제 자신도 존중할 수 있었습니다.

 

제 멘탈 퍼포먼스 코치님이 말해주신 것처럼, 야구장에선 ‘주니어’라는 인격으로 변하고, 집에선 그냥 ‘바비’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삶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단순한 변화가 제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죠. 이제, 저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경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결국, 그 변화를 통해 우리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고, 작년 시즌은 이제 기대감보다는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느껴집니다. 이제는 매 경기마다 ‘우리가 이길 거야, 당연한 거지’라고 믿고 경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캔자스시티와 팬들을 위해 열심히 싸우며, 드디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기회까지 오게 되었죠.

우리는 거의 다 왔다는 걸 저희 팀 모두가 알고 있고 믿고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플레이오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았어요. 양키스 시리즈에서 다시 한번 지나치게 노력했었고, 한 번의 스윙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다시 배울 거예요. 그건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경기를 뛰면서, 야구가 제게 뭔가를 말하려는 느낌을 더 자주 받게 됩니다. 아주 간단한 교훈이죠. 예를 들면...

 

"그냥 너 자신이 되어라. 그게 다다."

 

이걸 실천하는 건 저에게 달렸고, 이를 통해 저희 팀을 원하는 곳으로 이끌 수 있을 거예요. 이게 전부입니다. 

 

 

MVP 투표에서 2등을 한 거? 그건 저에게 다시 한 번 열심히 훈련해야겠다는 다짐만 줬어요. 

 

1등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더 중요한 건 제가 팀이 필요할 때,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리그에서 얼마나 잘하든, 도루를 많이 하든, 타점이 높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제 팀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트로피를 쥐지 못했으니까, 더 분발해야 해요. 그게 전부입니다.

 

이 팀에 대해 모든 것이 미래에 대한 흥분을 일으킵니다. 솔직히 가장 기대되는 건 팬들을 위해 특별한 일을 더 많이 해주는 거예요. 그들의 삶에 행복을 불러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죠.

 

작년은 운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정말 재밌어질 거예요. 저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캔자스시티에 있는 모두에게요.

 

지평선 너머로 정말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고, 그건 제가 로열스와 장기 계약을 맺은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직설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제 결정은 팀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곳, 이 공동체 때문이에요.

 

제 궁극적인 목표는 제가 존경하는 선수들(지터, 페드로이아)처럼, 한 팀을 위해 제 커리어를 바치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팀 유니폼을 입는 건 제게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고, 이 도시의 모든 것이 제게 정말 잘 맞는 느낌입니다. 제 가족과 저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제 편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축복인지 몰라요. 이 도시가 저를 따뜻하게 반겨주고 응원해준 만큼, 제 야구 선수로서의 유산 중 하나는 캔자스시티에 우승을 가져오는 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장기 계약을 원했습니다. 100% 그렇습니다.

 

구단과 제 소속사가 이를 위해 정말 잘 해주었지만, 결론적으로 제 결정이었고, 제가 원하는 바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제 가족에게 이곳이 얼마나 특별한 곳인지 얘기했어요. 물론 이런 계약엔 큰 돈이 오가지만, 그것이 제 목적은 아니었어요.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저는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FA가 되기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제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요?"

 

"여기가 제 고향 같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모두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환호할 만한 일을 만들어드리는 거죠.

거짓말은 안 할게요.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이 도시에 미친 영향을 잘 알고 있어요. 저도 정말 기뻤거든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캔자스시티를 위해 이런 시대를 열면 어떨까? 그래! 한 번 해보자!"

 

저희 스타디움 도로 건너편에서 치프스가 해마다 이루어내는 것을 봅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와 침묵의 암살자 같은 리더...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 정말 아끼는 것들이에요. 보는 내내 놀라웠죠. 

 

하지만 동시에 캔자스시티 팬들이 치프스의 금색과 빨간색에 자부심을 느끼고 의존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제는 로열스의 파란색에도 자부심을 느낄 차례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구장에 뛰기 두려워하던 그 아이 기억나시죠?

 

작년 12월에 결혼식 파티에서 위타버거 행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아버지다운 춤을 추셨고, 어머니는 박장대소를 하시며 누나들은 저와 매기를 위해 랩을 하고, 제 로열스 팀원들과 대학교 친구들은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축하하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와 매기가 무대 중앙에 서서 말이죠.

 

어느 순간, 춤을 추며 신나게 놀던 중 누군가 저와 제 아내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밴드 일원이 저에게 마이크를 건넸습니다.

 

마이크를 가리키며 엄지를 치켜올리고 씨익 웃더니 저희를 무대로 데려가더군요. 무대에 올라서자 'Don’t Stop Believin'을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왜 그 노래를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객분들은 정말 좋아하셨죠. 소리 지르며 환호하고 노래에 맞춰 날뛰었어요.

 

마이크를 받으면서 매기를 바라보며 서로 어깨를 으쓱하고는 "뭐 이렇게 된 거...어쩔 수 없지" 하며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초반에 매기는 대충 따라 부르고 민망한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저는 매기를 향해 눈빛을 쐈죠.

 

"모든 걸 쏟아 붓는 거야!"

 

그 뒤로 저는 완전히 몰입했습니다.

 

가사를 내뱉으며 미친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며, 그 순간이 제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어요. 솔직히, 그 어색하고 움츠러들었던 아이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이번 시즌에는 그 노래 가사를 마음속 깊이 새길 거예요. 영화 대본처럼요.

 

"믿음을 멈추지 말라고?"

 

"난 지금 미친듯이 믿고 있어."

 

"나와 함께 하지 않을래?"

 

 

출처 : MLBPARK KC플옵기원 님